문화/공연·전시

[전시]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 : 아르누보와 유토피아

bluewizy 2013. 9. 18. 21:58


<전시회 팜플렛 앞면>


아르누보와 동의어격인 무하의 한국 전시회가 얼마 남지 않아 다녀오게 되었다.

전시장은 섹션이 6개로 나뉘어 있었는데 무하의 작품의 특징에 따라 시기를 나눈 듯 하다.

이에 대해 아래에 간략히 정리하였으며

글과 그림은 전시회 팜플렛에서 주로 가져왔으며 도록의 글 일부 내용을 추가하였다.


Prologue

프롤로그(Prologue)


무하는 조국애와 가족애가 남달랐는데

그의 많은 자화상에서 자수가 놓인 러시아 전통의상 루바슈카를 입고 있는 것과

그의 가족 초상이 많이 등장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특히 무하는 그의 아들이 자신의 뜻을 이어 받아 화가가 되기를 바랬으나 결국 문학에서 더 빛을 발하는 작가가 된다.

하지만 이 덕분에 후에 아들 이르지가 그의 아버지의 전기를 기록하는 등 무하의 업적을 정리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SECTION 1.

파리의 보헤미안 (A Bohemian in Paris)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무명이었던 무하가 당대 프랑스 최고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를 위해 디자인하게 되면서 유명해지게 된다.

무하가 처음 작업을 맡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생계를 위해 상업예술가로 일을 하던 무하는 크리스마스 휴일 기간에도 인쇄소에서 홀로 일을 하였다.

이 때 베르나르측에서 급히 포스터 작업을 의뢰 해야 하는데 무하밖에 맡길 사람이 없어서 작업을 하게 된다.

이렇게 탄생하게 된 것이 지스몽다이다.

이 작품을 사라 베르나르가 너무 마음에 들어했고 이후 몇 년동안 무하가 그녀의 공연에 필요한 포스터, 무대, 의상 등을 디자인하게 된다.


지스몽다 <그림 출처: 전시회 팜플렛>


SECTION 2.

'무하 스타일'의 창시자 (The Creator of 'Le Style Mucha')


1890년대 들어 프랑스에서는 상업 문화 속 광고 수요가 증가하여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예술 형태를 탐구할 기회가 주어졌다.

도시의 광고 게시판들은 거리의 갤러리가 되었고 무하의 포스터는 파리 미술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 시기에 무하는 포스터의 성공 이후 담배, 향수, 맥주, 샴페인 등 다양한 상업 디자인을 하게 된다. (포스터, 상자, 메뉴판 등)

또한 무하는 상업 디자인에서 얻은 안정된 생활을 바탕으로 많은 장식 패널화를 작업했는데 일반 대중들도 쉽게 접근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무하는 장식 도큐먼트도 출판했는데 자신의 작업 비밀이라 할 수 있는 자연물을 장식으로 전환하는 과정 등도 포함되어 있어

자신이 획득했던 방법들에 대해 공유하고자 했다.


사계: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림 출처: 전시회 팜플렛>



SECTION 3.

코스모폴리탄 (A Cosmopolitan)


아르누보 양식과 더불어 무하의 명성은 커져갔다.

이를 반영하듯 파리 만국 박람회의 다양한 분야의 전시와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이 시기에 무하는 미국 활동도 활발하게 하게 되는데 훗날 작업할 <슬라브 서사시> 프로젝트 후원자를 찾기도 했고

미국대학에서 강의도 했고 극장을 위한 프로젝트도 진행 했었다.

특히 미국에서 유명했던 레슬리 카터와 마우드 애덤스 등과 협력을 통해 진행된 작품들이 많았고

뉴욕 독일 극장 전체를 아르누보 양식으로 했던 작업도 대규모였다.


잔다르크로 분한 마우드 애덤스 <그림 출처: 전시회 팜플렛>



SECTION 4.

신비주의자 (The Mystic)


초기부터 유심론을 추구했던 무하는 이 시기에 프리메이슨  파리 지부에 가입한다.

그리고 뒷 날 고향인 체코로 돌아가서는 프리메이슨 체코 지부 총 본부장으로도 활동한다.

이 시기에 만난 아우그스트 스트린드베리의 오컬트 과학에 영향을 받아 무하의 철학과 작품에도 큰 영향이 미친다.

기독교 주기도문에 대한 무하의 해석을 담은 '르 파테'를 출판하기도 했는데 여기에 다양한 프리메이슨 상징들을 사용했다.


예술: 춤, 회화, 시, 음악 <그림 출처: 전시회 팜플렛>



SECTION 5.

애국자 (The Patriot)


30여년 동안 고향을 떠나 있던 무하는 파리와 미국의 성공 이후 1910년에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향을 떠나 있으면서도 줄곧 조국을 위한 방향으로 작품을 제작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이의 결정체인 '슬라스 서사시' 제작 준비를 거의 10여년 동안 하였다.

이 작품을 통해 슬라브 동포의 정신적인 통합을 바탕으로 슬라브 국가의 공통 목표인 정치적인 독립을 이루고자 했다.

이는 1918년에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이 선포되면서 무하의 꿈은 이루어지게 되었다.

무하는 새로 건국된 조국을 위해 우표 및 지폐 디자인을 무상으로 지원하였다.


보헤미아의 노래 <그림 출처: 전시회 팜플렛>



SECTION 6.

예술적 철학가 (The Artist-Philosopher)


무하는 슬라부인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가 단합되기를 바랬다.

특히 그는 예술이 미래와 모든 이의 평화를 유지시키는 수단으로 되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가 바라던 평화의 기간은 짧았다.

독일 총리가 된 아돌프 히틀러에 의해 프라하가 점령당하고

프리메이슨인 그는 제일 먼저 수감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뒀다.

이 시기에 계획됐던 작품들은 비록 완성이 되지 못했지만 전쟁의 기운이 점점 다가올 때

그의 평화 메시지가 강렬히 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프라하 시 성 바투스 대성당 스테인드 글라스: 좌측 중심부 패널 최종 디자인 <그림 출처: 전시회 팜플렛>



막연히 아르누보에 대한 이미지와 무하라는 예술가를 알고 있었는데

이번 전시회를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고 그의 사상도 살짝 엿보게 되었다.

특히 그의 아루누보적인 디자인을 위해 많은 습작과 데생, 연구가 뒷받침되었는데

뛰어난 예술가들은 항상 기본기가 충실하고 그 바탕위에 새로움을 창조하는 듯 하다.

무하 그림의 특징 중 한가지는 사계 연작, 예술 연작, 꽃 연작, 하루의 시간 연작, 예술 연작 등 사물이나 개념을 의인화시키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의인화시키면서 그만의 개념을 집어 넣는 점이 아르누보적인 기법을 떠나서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좋은 전시회였고 한 번 더 가보고 싶긴 한데 기간 말미에 갔기 때문에 기회가 없어 아쉽다.

아래에 전시회장 바깥 사진 몇 장을 더해본다.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다 보이는 안내판

참고로 팜플렛 앞면과 이 간판에 쓰인 그림은 백일몽이다.


전시회장 층에 들어서자 마자 보이는 벽간판


전시회장 들어가는 입구 옆의 벽화.

평일에 가서 사람이 없어 바로 입장이 가능했다. 사람이 많은 경우 입장을 제한하고 순서대로 입장시킨다고 한다.)


전시관 입구 옆의 간판. 사계 연작 중 겨울과 봄.


전시관 입구 옆의 간판. 사계 연작 중 여름과 가을.


전시관 출구 쪽의 벽간판

왼쪽부터 꽃 연작 중 장미, <라 트라피스탱(술)> 광고 포스터, 예술 연작 중 회화, 예술 연작 중 춤 ,하루의 시간 연작 중 밤의 휴식, 하루의 시간 연작 중 저녁의 사색, 앵초, 깃털


출구 쪽의 전시회 간판.


포토존 입간판. 사계 연작 중 봄의 그녀가 모델이다. 혼자 가서 아름다운 그녀와 같이 찍지는 못했다. ^^;;


기념품 가게의 자석 상품.


기념품 가게의 전화케이스.


기념품 가게의 시계.


기념품 가게의 시계. 오른쪽에 있는 그림은 담배 <JOB> 광고 포스터.

이 밖에 더 많은 기념품이 있었고 사고 싶었지만 가격이 비싸서 아래 도록 하나로 만족하기로 했다.


거금을 주고 구매한 도록.

무하의 생애와 작품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완전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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